도예는 과학 실험이다! 鶴橋(츠루하시)에서 시작된, 지구를 녹여 유일무이한 타마야마야키를 만들다.
- 세라믹 및 석재 제품 제조
- 사람들과 연결
- 고유한 제품 및 서비스
오사카부
도예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뜻하며,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돌 가루로 만든 도자기로 나뉜다. 信楽焼(시가라키야키), 伊万里焼(이마리야키), 備前焼(비젠야키), 九谷焼(쿠타니야키) 등 지명을 딴 이름이 붙여져 일본 문화로 계승되고 있다. 최근 도예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사카 다마츠쿠리 히노데토오리 상점가에 위치한 Tama atelier는 2008년에 창업된 도예 공방으로, 일본식과 서양식을 가리지 않고 생활에 색채를 더하는 그릇을 제작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개인전에서의 그릇 판매, 킨츠키(金継ぎ) 의뢰, 오리지널 그릇 주문 제작, 도예 교실 운영이 있다. 최근 도자기는 저렴하고 대량 생산되는 경우가 늘었지만, Tama atelier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킨츠키(金継ぎ):도자기의 파손부분에 옻칠이나 금가루를 사용하여 수리하는 기법으로,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온 일본의 전통공예 중 하나
창업자인 타마야마 히로키 씨는 한때 アメリカ村(아메리카무라)에 다니며 미용사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진로 상담에서 "이대로 미용사로 가도 괜찮을까"라는 고민 끝에 자전거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고 한다. 이후, 대학에서 만난 도예 거장의 한마디가 타마야마 씨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5년. 현재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활동 중인 Tama atelier의 대표 타마야마 히로키 씨를 만나, 지금까지의 행보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PROTAGONIST
타마야마 히로키대표
참가자들 간의 교류가 넓어지는 슈퍼 도예 교실
타마야마 히로키 씨가 운영하는 도예 교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슈퍼 도예 교실”이다. 학생들은 타마야마 씨가 실제로 사용하는 고품질의 흙과 유약을 사용하여 완성도가 높은 그릇을 만든다. 두 번째는 “슈퍼 출장 도예 교실”이다. 일반적인 도예 교실에서는 흙을 반죽하고 형태를 만든 뒤, 후일에 구워진 작품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슈퍼 출장 도예 교실”은 참가자가 자신이 만든 그릇을 그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이 특징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컵을 만든 후 다 같이 건배를 하거나, 만든 라면 그릇에 라면을 담아 즐기는 활동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파르코의 녹화 계획의 일환으로 화분을 만들어 묘목을 가져가는 이벤트도 개최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다른 도예 교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내용일 것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폐기가 만연한 시대지만,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가졌으면 합니다. 자신이 만든 그릇은 애착이 생기고, 완성도가 높다면 오래 사용할 수 있겠지요. 제 도예 교실에서는 제가 실제로 사용하는 흙과 유약을 사용합니다. 초보자가 사용하기 쉬운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처럼 그릇을 만드는 체험을 단순한 도예 체험으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오래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그릇을 만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슈퍼 도예 교실의 참가자들은 모두 진지하게 그릇을 만든다. 그 결과, 각자가 애정을 담아 제작한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 간의 교류가 생기고, 넓어지는 것이 매력 중 하나다. 재회의 즐거움이나, 자신의 작품을 서로 자랑할 수 있는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예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된 거장과의 만남
타마야마 히로키 씨는 오사카 鶴橋(츠루하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아서 공원에서 나무를 깎아 연필처럼 만들거나, 아이스크림과 フランクフルト(소시지) 막대를 모아서 놀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테니스부에 소속되면서 밴드 활동도 병행하며 アメリカ村(아메리카무라)에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에는 카리스마 있는 미용사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미용사를 동경하여 친구들의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타마야마 씨에게 진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진로 상담 때 ‘이대로 미용사가 되는 건 재미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장래를 고민하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도쿄에 갔습니다. 4일간의 여행 동안,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고, 만들기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 오사카 예술 단기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미술부도 아니었고 데생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입학 초기에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제가 제일 수준이 낮았죠. 데생이나 논문은 솔직히 서툴렀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사카 예술 대학으로 편입 시험을 볼 때, 실기면접에서 선생님께 ‘네 작품은 재미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정말 기뻤고, 제가 해온 일이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바로 도예가의 거장인 柳原睦夫(야나기하라 무츠오) 씨였다. 당시 대학 3학년 편입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타마야마 히로키 씨 단 한 명뿐이었다. 사실, 야나기하라 선생님이 타마야마 씨를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이후 재학 중에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며 도예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예 교실을 맡게 되다
타마야마 히로키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도예 교실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도예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마와 도구를 갖추는 데 많은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연히 대학 작품을 보러 오신 분이 ‘교실을 맡길 테니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 교실의 위치가 정말 훌륭해서 감사히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도예가를 목표로 했던 대학 동기들 중 지금까지 이어가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5명 정도입니다. 돈을 모으는 동안 포기하는 분들도 계셨죠.”
타마야마 씨는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도예를 배우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학생 시절에는 개인전과 갤러리를 둘러보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특히 교토와 오사카의 전시회에는 빠지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고 한다.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고, 그것을 자신의 필터를 통해 작품에 반영해 왔다. 2008년에 아틀리에를 차린 지 15년이 되었지만, 자신을 도예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3년이라고 한다.
도예는 과학 실험
도예라고 하면 滋賀県(시가현)의 信楽焼(시가라키야키), 佐賀県(사가현)의 伊万里焼(이마리야키) 등이 유명하다. 많은 아틀리에는 흙과 유약의 종류를 제한하여 제작하지만, 한 가지 제작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색상과 흙을 사용하는 것이 Tama atelier의 매력이다.
“도예는 과학적인 실험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마 안은 지구의 마그마와 같은 1,200도의 온도가 됩니다. 가마 안에서 열을 가하면 흙과 유약이 녹으면서 변화합니다. 지구를 한 번 녹이고 다시 형태를 만드는 감각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온도를 바꾸고, 흙과 유약을 바꿔 구우면 수만 가지 조합이 가능합니다. 실험을 반복하면서 궁합이 잘 맞는 흙과 유약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마를 열 때는 지금도 설레요. 그렇기 때문에 아쉽게도 대량 생산은 할 수 없습니다.”
정해진 형태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玉山焼き”타마야마야키”가 탄생한다. 고객 주문이 들어온 경우에는 철저히 상담을 진행하여 원하는 이미지에 맞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과학 실험을 거듭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이라면 좌석 공간이나 자리 배치, 요리 내용을 듣고 도예 전문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하며, 서로 협력하며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듭니다. 고객들은 제작의 폭이 넓은 점을 특히 기뻐합니다. 제가 만든 그릇으로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 감격해서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도예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도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타마야마 씨는 진정한 그릇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야말로 자신의 작품을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식사를 할 때 그릇의 뒷면을 한 번만 봐도 좋습니다. 대량 생산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과 도예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고향 鶴橋(츠루하시)의 동료들과 함께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
타마야마 히로키 씨는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활동해왔다.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이어진 프로페셔널들과 함께, 앞으로는 일본에서 해외로, 특히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언젠가 미국 브루클린에서 개인전을 열고 ‘어메이징!’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본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도예를 통해 일본의 기술과 정신을 전하고 싶어요. 드래곤볼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시나요? 그 안에 나오는 ‘원기옥’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힘을 조금씩 모아 큰 힘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일본의 문화와 장인 정신이 담긴 작품을 가지고 가서,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싶어요.”
타마야마 씨는 다음 세대의 육성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다.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작가 지망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아틀리스를 제공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저는 대학 시절에 작품을 봐주신 분들 덕분에 아틀리에를 제공받아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고향인 츠루하시가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쓰루하시의 동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츠루하시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해외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타마야마 씨의 성격은 그의 작품과 활동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활동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에도 동료들의 힘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타마야마 씨의 메시지를 원문 그대로 전달한다.
“어차피 인생은 무엇을 해도 고생이 따르니까,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보람 있는 일을 여러 가지로 모색하며, 자신의 노력과 만남을 반복하고, 책임감이 아닌 사명감을 일에 담아야 합니다. 크레용 신짱 어록처럼, 인생은 산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마지막에는 더 나아지죠.”
※「人生は山あり谷あり」: 일본의 속담으로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인생은 산과 골짜기가 있다’라는 뜻으로, 의미로는 힘든 오르막을 다 오른 후에 편안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살다 보면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人生、山あり谷あり、尻上がり」: 크레용 신짱(한국명 :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의 명언으로 인생은 산과 골짜기가 있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일본의 속담을 인용하여 짱구가 특유의 재치와 농담을 사용한 말
INFORMATION
Tama atelier
Tama Atelier에서는
전통 일본식이든 서양식이든,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그릇을 제공합니다.
일상의 생활에 '색채'를 더하고,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그릇을 제안합니다.
맞춤 제작도 가능합니다.
선물, 가정용, 레스토랑 등 용도에 따라 고객과 상담하며 제작을 진행합니다.
그릇을 고르는 데 신경을 쓰는 것은 패션에서 옷을 고르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 설립
- 2008
- 직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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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사이트
- https://tama-atelier.net/
- Writer:
- GOOD JOB STORY 編集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