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자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구 장인,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구’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 목재 및 목재 제품 제조
- 지구 자원 고려하기
- 커뮤니티를 위한 노력
- 고유한 제품 및 서비스
- SDGs・지속가능성
오사카부
パレットハウスジャパン / 파렛트하우스재팬은 다리 달린 가구(테이블이나 의자)나 박스형 가구(책장, 식기장) 제작 및 공간 코디네이트(매장 디자인 및 종합 프로듀스)를 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사용하는 목재는 기본적으로 폐자재이다. 특히 수입 화물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목제 팔레트를 해체하여 가구를 만드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일본은 수입 대국이기 때문에, 지게차로 옮기는 팔레트가 화물 밑에 함께 붙어온다. 이 저렴한 잡목으로 만들어진 팔레트는 ‘원웨이(일회용)’로 불리며,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 양은 연간 9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폐자재를 수거하여 해체하고, 가구로서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오사카시의 작은 동네 공장에서 파렛트하우스재팬을 운영하는 오오마치 히로시 대표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PROTAGONIST
오마치 히로시대표이사
‘돈을 던지는 인생’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다

파렛트하우스재팬은 산업 폐기물로 버려지기 전에 팔레트를 수거하여 해체하고, 세척과 건조 과정을 거쳐 테이블이나 책장 등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폐자재로 만드는 테이블은 아마 세계에서 제일 비쌀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웃음) 수거, 해체, 세척, 건조 등 일반 가구 제조업체가 하지 않는 작업을 거쳐야 하니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폐자재로 만든 고급 가구로 세계 브랜드를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자재를 조달할 필요는 없지만, 폐자재를 하나하나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기술과 수고가 필요하다. 목재는 각각이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어 똑같은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나무를 사회로 되돌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겠다는 생각이에요. 마주친 폐자재를 빈티지풍 가구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건 모험 같아서 정말 설레요.”
파렛트하우스재팬의 이념은 ‘폐자재 퍼스트’에 있다. 그 다음이 ‘지구(환경)’, 그리고 그 다음이 고객이다. 대금을 지불하는 것은 고객이지만, 오오마치 씨는 고객을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이 사업의 서포터, 즉 후원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가구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 ‘버려졌던 폐자재들의 재생의 사실’을 함께 느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은요, 이렇게 다시 태어난 폐자재들도 가구로 사용할 수 있답니다.”라고 웃으며 콘셉트를 설명하며, 가족처럼 소중히 다뤄줄 것을 전제로 제작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돈보다 마음을 중시하는 이 자세가 고객의 신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폐자재에 국한되지 않고 목재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 역시 오오마치 씨의 매력 중 하나이다.
“저는 폐자재들도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게 해서 사회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유기된 고양이나 개를 보호해서 새로운 주인에게 보내주는 이미지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고객에게는 ‘이건 폐자재의 환생입니다. 당신의 가족처럼 함께 살아주었으면 해요’라는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껴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두 번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획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10년이 지나면 절반 가격에 되사고, 20년이 지나면 전액을 되사는 제도입니다.
20년이 지나면 전액으로 되사서, 고객에게 ‘절대 버릴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20년 후에 전액으로 되사면서 동시에 두 배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거예요. 20만 엔짜리 제품이라면 20년 된 가구는 40만 엔. 물론 그것도 다시 20년이 지나면 40만 엔에 되사서 80만 엔에 판매하는 식이죠. 이게 바로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비싼’ 빈티지 가구의 증명이에요. 오래될수록 제조사가 고가로 되사들이면 아무도 버리지 않게 되죠. 즉, 영원히 살아있는 가구가 되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은 세계 어디를 찾아도 없다. ‘100년 유지보수 보증하는 폐자재 가구’는 파렛트하우스재팬의 자부심의 표현이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도, ‘폐자재로부터 세계적인 인테리어 브랜드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빈티지 가구의 가치를 제조사 스스로 높여나간다. 이것이야말로 오오마치 씨의 흔들림 없는 이념이다.
‘팔지 않는 가구점’ 사장과의 갈등을 거쳐 독립하다

오오마치 씨에게는 개그맨을 꿈꿨던 과거가 있다. 사춘기 시절 뚱뚱한 체형이 콤플렉스였고, ‘재미있는 뚱보’를 연기함으로써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것이 개그맨이라는 꿈을 키우게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회사원이 되었고, 개그맨의 꿈도 포기하려던 찰나, 우연히 운전기사를 모집하던 요시모토 소속 ‘アホの坂田(아호 사카타 / 뜻 : 바보 사카타)’로 알려진 사카타 토시오를 소개받고, 운전기사 겸 제자로서 사사하게 되었다. 24살 봄의 일이었다. 극빈한 생활 속에서 2년간의 혹독한 수련을 거쳐, 26세에 만담 콤비 ‘라임라이트’의 보케(웃긴 역할) 담당인 ‘라이트 사카타’로 데뷔했다.
2년 선배인 지미 오오니시에게는 “너는 나보다 더 바보다”는 말을 들었고, 시마다 신스케에게는 “너만 배트 대신 우산 들고 타석에 서 있는 놈이야!”라고 불릴 만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개그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개그맨으로 활동한 기간은 고작 5년이었지만, 그 사이 몇몇 상을 수상했고, 한때는 ‘넥스트 다운타운’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개그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콤비는 해체되었다. 그 후 1년 동안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뉴욕에서는 세계의 엔터테인먼트를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자존감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해외에는 정말 대단한 엔터테이너가 너무 많아서, ‘내가 제일이다’라는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돈도 떨어지고, 내 한계를 느꼈죠. 귀국 후에는 라디오 리포터를 계속하면서 생계를 위해 아는 가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접객이나 판매 쪽이 개그맨보다 나에게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어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그는 가구를 사러 온 손님에게 첫 마디로 “가구는 안 사는 게 좋아요! 왜냐면 일본은 해외보다 좁으니까요.”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손님들은 놀라워했지만, 차츰 “저 금발 청년은 억지로 팔지 않는다”며, ‘팔지 않는 가구점의 청년’으로서 신뢰를 얻어 오히려 최고의 판매원이 되었다.
하지만 당연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사장과는 “당신은 가게 쪽 사람인가요, 고객의 편인가요?”라는 충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땐 ‘당연히 고객 편입니다!’라고 즉답했어요. 화가 난 사장은 ‘당신은 결국 개그맨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개그맨은 경영을 못 해!’라고 했죠. 고객 편이라서 뭐가 문제죠? 전 모두가 배트를 짧게 잡고 1루로 달릴 때, 굳이 우산을 들고 3루로 달리는 사람이에요. 사장님과는 생각이 늘 반대였어요. ‘멍청한 거 아냐?’란 말을 듣고 만족했죠. 왜냐하면 저는 바보 사카타의 제자니까요. (웃음)”
하지만 개그맨이 가구점을 경영한다면 어떤 가게가 될까? 결국 하고 싶은 건 ‘재미있는 가구점’. 그것이 2004년에 창업한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さん(운코짱 가구점 / 똥 가구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폐자재 가구에 도전하다
그 후 독립하여 시작한 것이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이다.
※ ウンコ는 한국어로 [똥]이라는 의미로 다소 엉뚱하고 장난기 있는 표현이지만, 브랜드 이름으로는 파격적이고 기억에 남는 유머를 담고 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이름이었다. 가구 업계는 이에 크게 놀랐고, 배송 트럭에는 ‘똥이야 얕보면 큰일 나~!’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어 업계에 대한 오오마치 씨 나름의 메시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가구 업계에서 “그런 장난 같은 데다 B급 제품을 파는 가게는 금방 망할 거야”라며 얕봤지만, 점차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은 SNS도 없던 시절 입소문을 통해 화제가 되었고, 매출도 순조롭게 상승했다.
훗날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킨 ‘똥 드릴(うんこドリル)’은 그로부터 13년 뒤의 일로, 키워드의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うんこドリル : 일본의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 교재와 그림책 시리즈
제목에는 약간 유머러스한 “똥”이 들어가 있지만, 내용은 수학, 국어, 과학 등 다양한 과목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구성지루하기만 했던 기존 가구점들과는 차별화된 놀이공원 같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주말에는 오오마치 씨가 ‘똥 외계인’ 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노는 모습이 대인기를 끌었고, 당연히 방송 취재도 쇄도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유명세를 타며, ‘엽기적인 콘셉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님이 늘고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공격적인 연출은 필요 없어졌고, 손님 응대에만 쫓기면서 더 이상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가구점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개성이 옅어진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은 점점 하향세를 걷게 되었다.
창업 7년째였던 2011년 3월 11일, 전환점이 찾아왔다.
“도호쿠 대지진 당시 집이 휩쓸려서, 그곳에 있었던 가옥과 가구들이 산산조각 나서 해변에 떠밀려 온 걸 보았어요. 그 순간 다시금 깨달았어요. 가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식탁처럼 매일 마주하는 가족 같은 존재라는 걸요.
그래서 그 잔해더미에서 가구를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는 가구를 만들 줄 몰랐고, 가구 제조업체들도 ‘그건 무리입니다’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좌절감이 제게 가장 큰 계기가 되었죠.”
그로부터 3년 뒤, 목재 팔레트라는 대량의 폐자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오마치 씨는 “쓰레기로 소각되는 팔레트를 빈티지 감성의 가구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너 이 폐자재 살려라!”라는 간사이 사투리의 나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목재 팔레트는 소각이 불가능하며, 산업 폐기물로 처리된다.
더 이상 나무로서의 역할은 끝났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살아 있고 일할 수 있다.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을 시작한 지 9년째, 오오마치 씨는 새로운 모험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폐자재를 사회로 되돌려주자. 도호쿠 대지진에 대한 복수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폐자재 가구 회사를 만들어 보자!”
그동안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밑천 삼아, 직접 창업한 그 가게를 양도하고,
2014년, 폐자재를 사회로 되돌리는 가구 제조업체 ‘파렛트하우스재팬’을 설립하게 되었다.
잔고 2,780엔, 도산 직전에 마주한 ‘나무신’

폐자재로 가구를 만든다는 것은, 수거·운반·해체·세척·건조 등 보통 가구 제작의 3배는 손이 가는 작업이다. 인건비 또한 만만치 않다. 누구나 봐도 수익이 나기 힘든 사업이다. 11년간 이 일을 이어오면서 흑자를 낸 해는 단 두 번뿐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자금 6천만 엔도 모두 녹아버렸다고 한다.
임대료, 인건비, 자재용 트럭 구매 등 모든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 왔다. 당연히 사장인 자신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있을 리가 없었다.
“연말이 되었을 때, 회사 계좌 잔고가 드디어 2,780엔이 되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그만뒀겠죠. (웃음) 그래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석 달도 못 버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무신이 뭔가 해주시겠지’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새해 1월 15일, 기적이 시작되었다.
어느 제조사와의 OEM 카탈로그가 완성된 것이다. 훌륭한 카탈로그에 환호가 터져 나왔고, 전시용으로 100만 엔을 선불로 입금해 주었다.
게다가 그것을 본 지인의 기업으로부터 쇼룸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돈이 없다고 말하자, 무려 500만 엔을 선입금해 주었다.
나무신은 나를 알몸으로 만들 듯 모든 것을 거두어 갔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버리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역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우메다 에스트 푸드홀, 요코하마 베이사이드 푸드홀, 한신·한큐 백화점, NTT 서일본, 닛켄셋케이, 파나소닉 등 대기업들이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산 위기를 넘긴 지금, SDGs의 선두주자인 ‘파렛트하우스재팬’은 폐자재 가구로 세계 브랜드를 목표로 전 세계 판매를 시작했다.
그것도 고급 노선. 말하자면, 폐자재로 만든 ‘람보르기니’인 셈이다.
‘덮기만 하면 쓰레기 없이 테이블 교체’, ‘개업 지원 구독 서비스’, ‘자사 제품을 20년 쓰면 무료’ 등 업계 최초의 시도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여전히 누구도 하지 않는 기발한 발상으로, 전 세계를 향해 일본의 SDGs 제조업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타석에 우산을 들고 서는 남자, 바로 오오마치 히로시.
현재 그는 노래하고 춤추는 ‘폐자재 아저씨 65세’로 SNS에서 활약 중이다. (웃음)
“폐자재가 주인공”인 세련된 세계 기업을 지향하다
‘ウンコちゃんの家具屋(똥 가구점)’에서의 성공과 전환점을 거쳐, 오오마치 씨는 다음 도전에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폐자재를 활용한 가구 제작을 세계적으로 전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폐자재로 만드는 가구에는 단순한 재활용에 그치지 않는, 더 넓은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오마치 씨에게는 ‘폐자재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다’는 목표가 있다.
“예를 들면 레이디 가가가 폐자재로 만든 옷을 입어주는 것, 일본의 경제 심층 프로그램 ‘ガイアの夜明け(가이아의 새벽)’에 출연하는 것, 상업 공간 디자인 전문지인 ‘商店建築(쇼텐켄치쿠)’에 소개되는 것, 국제 기업에서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것 등 다양한 꿈이 있어요.
결국에는 유럽이나 미국, 북유럽처럼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은 지역에서 저희 제품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세계 쪽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와서, ‘드디어 왔군’ 하고 잘난 척하고 싶네요. (웃음)”
제조업계에서는 아직 폐자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미미하다.
오오마치 씨는 ‘세계의 폐자재로 세계 브랜드를 만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과의 연계도 빠질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이후 목재의 재활용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12년간 폐자재를 사회로 돌려보낸 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괜찮은 일을 하시네요. 월급은 적지만’ 하고 동네에서 말해주는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폐자재입니다.
버려졌던 목재가 재생되어 가족과 함께 오래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파렛트하우스재팬의 역할이에요.”
‘나무신의 사자’라 불리는 ‘폐자재 아저씨 65세’는 밝게 웃었다.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에서 활약하는 세련된 기업이 되고 싶다는 것이 오오마치 씨의 비전이다.
일본의 기업은 해외에서 먼저 평가받은 후 국내에서 인정을 받는 경우도 많다.
목재를 소중히 여기는 파렛트하우스재팬의 자세는, 해외에서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높게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오오마치 씨는 “지역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폐자재 활용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세계적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고 싶습니다”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INFORMATION

パレットハウスジャパン
PALLET HOUSE JAPAN은 2014년 3월 1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간사이 지역의 젊은 크리에이터, 장인, 디자이너들이 오사카 시의 작은 공장에 모여, 간사이 산업에서 나오는 폐목재 팔레트와 오래된 비계 자재를 독창적인 아이디어, 대담한 디자인, 정통 가구 제작 기술로 빈티지풍 디자이너 가구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 가구를 중심으로 한 인테리어 공간도 전체적으로 디자인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자각하며 세계적인 인테리어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콘셉트와 친환경 디자인이 주목을 받아,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음식점, 의류 매장, 사무실, 중고 주택 리노베이션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되고 있습니다.
매장·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전반의 판매, 오리지널 가구 제작, 시공까지 인테리어를 토탈 프로듀싱합니다.
- 설립
- 2014
- 웹 사이트
- https://www.pallet-house.jp/
- Writer:
- GOOD JOB STORY 編集部